종교계에서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고 다 하나님의 말씀에 속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분별해야 하는가
종교계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고 다 하나님의 말씀에 속한다고 여기는데, 이 말을 어떻게 분별해야 하는가?
종교계에서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고 다 하나님의 말씀에 속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분별해야 하는가
『지금의 사람들은 늘 성경이 하나님이고, 하나님이 곧 성경이라고 여긴다. 또한 하나님은 성경에 있는 만큼만 말씀을 했고, 성경에 있는 고만큼의 말들이 전부 하나님이 말씀한 것이라고 여긴다. 심지어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은 신구약 66권은 비록 사람이 쓴 것이지만 다 하나님이 묵시한 것이고 성령의 말씀을 기록한 것이라고 여긴다. 이것은 사람이 치우치고 그릇된 방식으로 터득한 것이고, 사실에 완전히 부합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구약에서 예언서를 제외한 대부분은 다 역사 기록에 속한다. 신약 서신의 어떤 것은 사람의 경력에서 비롯된 것이고, 어떤 것은 성령의 깨우침에서 비롯된 것이다. 바울이 쓴 서신과 같은 것은 사람이 행한 일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것은 모두 성령이 깨우쳐 준 것으로, 뭇 교회에 보낸 서신들이고 뭇 교회의 형제자매들에게 주는 권면과 격려이지, 결코 성령이 한 말씀은 아니다. 바울은 성령을 대표하여 말을 할 수 없고, 게다가 바울은 선지자도 아니고 이상(異象)은 더더욱 보지 못했다. 그 편지는 그 당시의 에베소, 빌라델비아, 갈라디아 등 몇 곳의 교회들에 써 보낸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의 바울 서신은 다 바울이 그런 교회들에 써 보낸 편지인데, 성령이 묵시한 것이 아니고 성령이 직접 했던 말씀도 아니며, 그저 사역하는 기간에 뭇 교회에 대한 바울의 권면과 위로와 격려이고, 또한 그 당시에 바울이 했던 많은 사역을 기록한 것이다. 그는 주 안에 있는 모든 형제자매들에게 편지를 써 보냈을 뿐만 아니라, 당시 모든 교회의 형제자매들에게 자신의 권유를 듣고 주 예수의 모든 도(道)를 준행하도록 한 것이다. 바울은 결코 오늘날의 교회이든, 이후의 교회이든 다 자신의 것을 먹고 마셔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고, 또한 자신이 했던 그런 말들이 완전히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도 말하지 않았다. 바울은 단지 그 당시 교회의 정형에 근거하여 형제자매들과 교통하고 그들을 권면하여 믿음을 분발시켰을 뿐이며, 단지 설교하거나 일깨워 주고 권면해 주었을 뿐이다. 바울은 자기의 부담에 결부시켜 말했는데, 그런 말로 그 사람들을 부축하였다. 바울은 그 당시 뭇 교회의 사도의 사역을 하였는데, 주 예수가 쓰는 일꾼이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교회에 대해 책임을 져야 했고, 교회 사역을 담당해야 했으며, 형제자매들의 정형을 파악하고 있어야 했다. 그리하여 바울은 주 안에 있는 모든 형제자매들에게 편지를 써 보냈던 것이다. 바울이 했던 말들이 무릇 사람에게 덕이 되거나 긍정적인 말이라면 모두 맞는 것이지만, 결코 성령의 말씀을 대표할 수 없고 하나님을 대표할 수는 없다. 사람이 만일 사람의 경력을 기록한 것과 사람의 서신을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는 말씀으로 여긴다면, 그것은 완전히 그릇된 방식으로 인식한 것이고, 크나큰 모독이다! 특히 바울이 뭇 교회에 보내 준 서신이다. 그것은 바울이 그 당시에 각 교회의 정황과 각 교회의 현실적인 상황에 근거하여 형제자매들에게 편지를 써서 주 안에 있는 형제자매들을 권유하여 주 예수에게서 은혜를 받도록 한 것이고, 당시의 형제자매들을 격려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바울 본인의 부담이고 또한 성령이 그에게 더해 준 부담이다. 어차피 바울은 그 당시에 뭇 교회를 이끄는 사도였기에, 뭇 교회에 편지를 보내 권면하는 것은 그의 책임이었다. 바울의 신분은 그저 사역하는 사도이고 보냄받은 사도일 뿐, 선지자도, 예언자도 아니기에, 그에게 있어 자신의 사역과 형제자매들의 생명이 가장 중요했다. 그러므로 바울은 성령을 대표하여 말할 수 없다. 바울이 했던 말은 성령의 말씀이 아니고 더욱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바울은 단지 피조물일 뿐, 하나님의 성육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울과 예수의 신분은 같지 않다. 예수의 말씀은 성령의 말씀이고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왜냐하면 예수의 신분은 그리스도, 즉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바울을 어떻게 예수와 동등하게 여길 수 있겠는가? 사람이 바울의 서신이나 바울의 말과 유사한 것들을 성령의 음성으로 여기고 하나님으로 삼아 경배한다면, 너무나 분별이 없다고 할 수밖에 없다. 좀 심각하게 말하면, 사람이 하는 것은 완전히 모독이 아닌가?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대표하여 말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사람의 말과 사람이 쓴 서신의 기록을 ‘성서’로 삼고 ‘천서(天書)’로 삼아 엎드릴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이 함부로 할 수 있는 것인가?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대표하여 말할 수 있겠는가? 네가 말해 보아라, 그러한데 바울이 교회에 써 보낸 편지에 자신의 생각이 뒤섞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바울의 인의적인 것들이 뒤섞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바울은 자신의 경력과 생명 정도에 따라 교회에 편지를 쓴 것이다. 마치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 편지를 쓴 것이 일종의 견해이고, 베드로가 갈라디아 교회에 쓴 편지가 또 다른 일종의 견해인 것과 같다. 도대체 어느 것이 성령으로부터 비롯된 것인지 그 누구도 분명하게 말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저 그들에게 교회에 대한 부담이 있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편지 한 통은 그들의 분량을 의미하고, 형제자매들에 대한 그들의 공급과 부축을 의미한다. 또한 교회에 대한 그들의 부담을 의미하고, 사람이 사역하는 한 면만을 의미할 뿐, 절대 성령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은 아니다. 네가 그의 서신이 성령의 말씀에 속한다고 말한다면, 너는 그릇된 것이다. 그것은 모독에 해당된다! 바울의 서신과 신약의 다른 서신은 근대 영적 인물의 전기(傳記)에 해당하는데, 워치만 니의 책 또는 로렌스의 경력 등등, 이 사람들이 쓴 영적 전기와 함께 논할 수 있다. 다만 근대 인물들이 쓴 책은 성경 신약에 편성되지 않았을 따름이다. 그러나 그들의 실질은 같은 것이고, 성령이 한 단계에서 사용하는 인물들이지, 직접 하나님을 대표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