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타남은 새 시대를 가져다 주었다

2019. 6. 6. 08:02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낭송/대표적인 말씀 (발췌문)

하나님의 나타남으로 새 시대가 열렸다


   하나님이 계획한 6천년 경륜은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고, 하나님나라의 대문은 하나님의 나타남을 찾는 모든 이들을 향해 열렸다. 사랑하는 형제자매여, 지금 무엇을 기다리고 있느냐? 무엇을 찾고 있느냐? 하나님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지 않느냐?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고 있지 않느냐? 사람은 하나님이 나타나기를 얼마나 갈망하고 있는가! 또한 하나님의 발자취는 얼마나 찾기 어려운가! 이러한 시대에, 이러한 세상에서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나타나는 날을 볼 수 있겠느냐?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라갈 수 있겠느냐? 이런 문제는 하나님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직면하고 있는 문제다. 아마 너희들은 이 문제에 관해 수차례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어떠하냐? 하나님은 어디에 나타나느냐? 하나님의 발자취는 어디에 있느냐? 이에 대한 답을 찾았느냐?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하나님은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나시며, 하나님의 발자취는 바로 우리 가운데에 있습니다. 이렇게 간단합니다!” 이 같은 틀에 박힌 대답이야 누구든 할 수 있다. 하지만 너희들은 하나님의 나타남이란 어떤 것인지, 또 무엇이 하나님의 발자취인지 명확하게 알고 있느냐? 하나님의 나타남이란 하나님이 친히 이 땅에 와 사역을 하는 것이다. 그만의 신분으로, 그만의 성품으로 그리고 그만의 고유의 방식으로 사람들 가운데에 강림하여 시대를 열고 시대를 끝내는 사역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타남은 어떠한 의식이 아니요, 어떠한 징조도 아니며, 한 폭의 그림도 아니고, 이적이나 큰 이상(異象)도 아니며, 종교적 과정은 더더욱 아니다. 하나님의 나타남은 누구나 만질 수 있고 누구나 목격할 수 있는 실제 사실이다. 하나님의 나타남은 과정을 거치기 위함이나 단시간의 사역을 위해서가 아닌 그의 경륜의 한 단계 사역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나타남은 의의가 있고, 그의 경륜과 관련이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나타남’은 하나님이 사람을 인도하고 이끌고 깨우칠 때의 ‘나타남’과는 완전히 다르다. 하나님은 매번 나타날 때마다 큰 사역을 하는데, 그 사역은 그 어떤 시대에 했던 사역과도 다르다. 그것은 사람이 상상할 수 없고, 체험해 본 적도 없는 것이다. 또한 새로운 시대를 열고 기존의 시대를 끝내는 사역이며, 인류를 구원하는 새롭고 높아진 한 단계 사역이자 인류를 새 시대로 들어가도록 이끄는 사역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타남의 의의이다.

   하나님의 나타남이 어떤 것인지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면, 하나님의 발자취는 어떻게 찾아야 하겠느냐? 사실 이 문제를 설명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것은 하나님이 나타나는 곳에 바로 하나님의 발자취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설명은 듣기에는 간단해 보이지만 정작 해 보려면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디에 나타날지 모르며, 하나님이 어디에 나타나려 하는지, 하나님이 어디에 나타나야 하는지는 더욱 모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매우 충동적으로 성령이 역사하는 곳이 바로 하나님이 나타나는 곳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혹은 영적 인물이 있는 곳이 바로 하나님이 나타나는 곳이라고 여기거나 지명도가 높은 사람이 있는 그곳이 하나님이 나타나는 곳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러한 생각의 옳고 그름에 관한 논의는 잠시 접어 두자. 이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목표를 명확히 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으려는 것이지 영적 인물을 찾으려는 것이 아니며, 유명 인사를 따르려는 것은 더욱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발자취를 좇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으려면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이 발한 음성을 찾아야 한다. 하나님의 새 말씀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음성이 있고, 하나님의 발자취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행사가 있으며, 하나님의 선포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나타남이 있고, 하나님이 나타나는 그곳에 진리, 길, 생명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너희들은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는 과정에서 “하나님은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다”라는 말을 간과하였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얻고 나서도 그것이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은 것이라 생각지 않고, 그것이 하나님의 나타남이라고 인정하지도 않은 것이다. 이 얼마나 심각한 실수인가! 하나님은 사람의 관념대로 나타날 리도 없고, 사람의 요구에 따라 나타날 리는 더더욱 없다. 하나님은 자신의 선택과 계획, 자신의 목표와 방식으로 사역을 한다. 그는 어떤 사역을 하든 사람과 의논할 필요가 없고, 사람들의 의견을 구할 필요도 없으며, 모든 사람들에게 일일이 알릴 필요는 더더욱 없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이며 모든 사람들이 응당 알아야 할 바이다.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고자 하고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르고자 한다면 먼저 스스로의 관념에서 빠져나와 하나님이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고 지나치게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 나아가 하나님을 너의 범위 안으로 한정하거나 너의 관념 속에 가두어 놓지 말아야 한다. 대신 어떻게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아야 할지, 하나님의 나타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에 어떻게 순종해야 할지를 생각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해야 할 일이다. 사람은 모두 진리가 아니며 또 진리를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에,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오직 찾고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타남은 새 시대를 가져다 주었다



   네가 미국인이든, 영국인이든, 어느 나라 사람이든 자신의 국적에서 벗어나고 자아를 초월하여 피조물의 신분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바라봐야 한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발자취를 어떠한 범위 안으로 한정하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의 관념 속에는 하나님이 특정 국가나 민족에게 나타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역 의의가 얼마나 깊은지, 하나님의 나타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사람의 관념과 사유로 어찌 가늠할 수 있겠느냐? 그래서 나는 네가 국적이나 민족의 관념을 깨부수고 하나님의 나타남을 찾으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관념에 속박되지 않고, 하나님의 나타남을 맞이할 자격이 주어진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영원히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이고, 영원히 하나님의 칭찬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온 인류의 하나님이다. 그는 어떤 국가나 민족의 사유 재산이 된 적이 없으며, 어떠한 형식이나 국가, 민족에 얽매이지 않고 그의 계획에 있는 사역을 한다. 그 형식은 네가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는 것일 수도 있고, 너는 이 형식에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 하나님이 나타나는 국가와 민족은 사람들이 모두 멸시하거나 지구상에서 가장 낙후된 국가와 민족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는 그의 지혜가 있다. 그는 그의 큰 능력으로, 그의 진리와 성품으로 그와 한마음 한뜻인 사람들을 얻었으며, 온갖 고난과 시련을 겪고 핍박받으면서도 끝까지 따를 수 있는, 그가 온전케 하려는 정복된 사람들을 얻었다. 하나님의 나타남이 특정 형식이나 국가에 구애받지 않는 것은 그가 계획해 놓은 사역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유대에서 말씀이 육신 된 것이 십자가에 못 박혀 온 인류를 속량하는 사역을 완성하기 위함이었던 것과 같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그렇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주 예수의 형상으로 성육신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그들의 ‘불가능’은 그들이 하나님을 정죄하고 대적하는 근거가 되어 결국 이스라엘이 멸망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 역시 이 같은 오류를 범했다. 그들은 하나님이 곧 나타날 것이라고 제멋대로 떠들어 대면서도 정작 하나님의 나타남을 정죄했다. 그들의 ‘불가능’은 또다시 하나님의 나타남을 그들의 상상 속에 규정지어 버렸다. 그러므로 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접하고는 미친 듯이 웃어 대는 것을 보았다. 그 ‘웃음’이 바로 유대인들처럼 하나님을 정죄하고 모독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너희들은 진리 앞에서 경건하지 않으며, 진리를 간절히 사모하지도 않는다. 그저 덮어놓고 연구하고 무심하게 기다리기만 한다. 그러한 연구와 기다림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느냐? 설마 하나님이 친히 인도해 주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단 말이냐? 하나님의 말씀조차 분별하지 못하면서 무슨 자격으로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겠다는 것이냐? 하나님이 나타나는 곳에 진리가 선포되고, 그곳에 하나님의 음성이 있다.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하나님의 나타남을 볼 자격이 있다. 너의 관념을 내려놓아라! 마음을 평온히 하고 이 말씀을 자세히 읽어 보아라. 진리를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만 있다면 하나님은 네가 그의 뜻을 깨닫고 그의 말씀을 이해하도록 깨우쳐 줄 것이다. 너희들의 ‘불가능’하다는 논리를 내려놓아라!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일수록 더욱 가능한 일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지혜가 하늘보다 높고, 하나님의 생각이 사람의 생각을 넘어서며, 하나님의 사역이 사람의 사유 관념의 범위를 초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불가능한 일일수록 찾아야 할 진리가 있는 법이고, 사람의 관념으로 상상할 수 없는 일일수록 거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어디에 나타나든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이며, 절대 하나님이 나타나는 지역이나 방식에 따라 하나님의 본질이 바뀔 리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발자취가 어디에 있든 그의 성품은 바뀔 리 없고, 하나님의 발자취가 어디에 있든 그는 온 인류의 하나님이다. 주 예수가 이스라엘인들의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모든 아시아ㆍ유럽ㆍ미주 사람들의 하나님이듯, 우주 위아래의 유일무이한 하나님이듯이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의 나타남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르라! 하나님은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다. 그의 말씀과 나타남은 공존하며, 그의 성품과 발자취는 언제나 인류에게 공개되어 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여! 나는 너희가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고,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라 새 시대를 향해 걸음을 내디디며, 하나님이 그의 나타남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예비해 놓은 아름다운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들어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