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은 반드시 징벌 받고야 말 것이다

2019. 6. 20. 06:24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책/그리스도의 말씀

악인은 반드시  징벌 받을 것이다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이 의(義)를 행하고 있는 것인지, 자신의 모든 행위가 하나님의 감찰을 거쳤는지를 점검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일처리 원칙이다. 너희는 하나님을 만족케 할 수 있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칭함받고, 하나님의 보호와 보살핌을 받아들임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칭함받는다. 하나님이 보기에는 무릇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그리고 온전케 함을 받아들이고 하나님께 얻어지는 사람은 모두 의인이고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현실적인 말씀을 받아들일수록 하나님의 뜻을 더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고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살아낼 수 있으며 하나님의 요구를 더욱 만족케 할 수 있다. 이것은 너희에 대한 하나님의 부탁이고 너희 모든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것이다. 사람이 만일 관념으로 하나님을 판단하여 규정하면서 하나님을 마치 영원히 변하지 않는 돌부처인 것처럼 완전히 성경에 규정하고 유한한 사역에 고정시킨다면 너희가 하나님을 정죄했음을 증명한다. 구약시대의 유대인들은 마치 하나님은 메시아라고만 칭할 수 있고 메시아로 불려야 하나님인 것처럼 하나님을 마음속에 고정된 우상으로 삼고 돌부처(무생명)로 여겨 섬기고 경배했기 때문에 당시의 예수를 사형 선고하여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리하여 원래 죄 없는 예수가 죽을 죄로 판결받은 것이다. 하나님은 무고한데 사람들은 오히려 하나님을 놓아주지 않고 막무가내로 그에게 사형을 선고하여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된 것이다. 사람은 늘 하나님을 고정불변하다고 여기면서 한 권의 성경에 근거하여 하나님을 규정하는데, 마치 하나님의 경영을 꿰뚫어 본 것 같고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장악하고 있는 것 같다. 인류는 극도로 터무니없고 거만하며 사람은 모두 큰소리치기 좋아한다. 하나님에 대한 너의 인식이 얼마나 높든지 간에 나는 네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을 가장 대적하는 사람이며 하나님을 정죄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너는 하나님의 사역에 전혀 순복(역주: 순종)할 줄 모르면서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는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에 하나님은 사람이 하는 일에 대해 늘 만족해하지 않는가? 그것은 사람이 언제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관념이 너무 많으며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조금도 실정에 부합되지 않고 천편일률적이며 남의 것을 모방하고 억지로 끼어 맞추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하기를 하나님이 오늘날 땅에 와서 사람에게 또다시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한다. 잔혹한 인류야! 언제까지 서로 암투를 벌이고 쟁탈하며 서로 명리를 다투고 서로 싸우고 죽이겠느냐? 비록 하나님이 무수히 많은 말씀을 하였을지라도 각성하는 사람이 없다. 가정과 자녀를 위하고 사업, 전망, 지위, 허영, 돈을 위하며 먹고 입는 것과 육체를 위하는데 누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위하는가? 설령 하나님을 위하는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불과 몇이 되지 않는다. 자기 개인의 이익을 위하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을 억누르거나 배척하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그래서 하나님이 얼마나 많이 강제로 사형 판결을 받았는지 모르고 얼마나 많은 잔혹한 법관들이 하나님을 정죄하여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았는지 모른다고 한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위하므로 의인이라 칭함받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악인은 필연코 징벌 받고 말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자로 혹은 의인으로 온전케 되려는 것이 그렇게 쉬운가? “세상에는 의인이 없고 의인은 세상에 있지 아니하다”, 이것은 진실된 말이다. 너희가 하나님 앞에 와서 너희의 옷차림새를 좀 보고 너희의 일언일행(一言一行)과 일거일동 그리고 매 하나의 마음과 생각을 살펴보아라. 너희가 매일 꾸는 꿈마저도 자신을 위한 것이다. 이것이 실정이 아닌가? ‘의’란 결코 사람에게 베풀거나 남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거나 말다툼하지 않고 빼앗지도 훔치지도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이 부탁한 것을 자신의 임무로 할 수 있고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복하는 것을 천직으로 하는 것을 말한다. 마치 주 예수가 행한 모든 것과 같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말씀한 의이다. 롯이 의인이라 칭함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자신의 득실을 따지지 않고 하나님이 보낸 두 천사를 구했기 때문이다. 그가 당시에 행한 일은 의롭다고 칭할 수 있지만 그를 의인이라고 칭할 수는 없다. 롯이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에 자기의 두 딸을 두 천사와 바꾸려 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이전에 행한 것은 결코 다 의를 대표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나는 “세상에는 의인이 없다”라고 말한다. 이 회복류(역주: 지방 교회) 가운데 있는 사람일지라도 의인이라고 칭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네가 행한 것이 아무리 좋고 겉으로 아무리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며 남을 때리거나 욕하지 않고 빼앗지 않는다 해도 의롭다 칭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런 것은 정상 사람이 갖출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관건은 지금 네가 하나님을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오늘날에야 비로소 너에게 정상 인성이 조금 있게 되었다고 할 수 있을 뿐 결코 하나님이 말씀한 의(義)의 성분은 없다. 그러므로 너의 모든 행위는 네가 하나님을 안다고 증명하지 못한다.


   이전에 하나님이 하늘 위에 있을 때, 사람은 하나님을 기만하면서 일을 하였다. 오늘날 하나님이 이미 사람들 가운데 온 지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사람은 일을 함에 있어서 여전히 하나님을 건성으로 대하고 기만한다. 이것은 사람의 의식이 너무 뒤떨어진 것이 아닌가? 마치 유다가 예수가 오기 전에 늘 거짓말로 형제자매들을 속이고 예수가 온 후에도 여전히 고치지 않고 예수를 조금도 알지 못해 결국 예수를 판 것과 같다. 이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 연고가 아닌가? 만일 오늘날 너희도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면 역시 유다가 될 수 있다. 이에 따른 결과는 바로 몇천 년 전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은혜시대의 비극이 재현되는 것이다. 너희는 믿어지지 않는가? 이것은 사실이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런 상황에 처해 있다. 아마 나의 이 말이 좀 이른 것 같지만, 이러한 사람은 모두 유다의 역할을 맡는 인물이다. 나는 함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에 근거하므로 네가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많은 사람들이 겉으로는 겸손한 척하지만 사실 마음속에 담고 있는 것은 가득 고인 물이고 시궁창이다. 지금 교회에 이런 사람이 너무 많은데, 너희는 내가 조금도 모른다고 여긴다. 오늘 나의 영이 나를 위해 주도하며 나를 위해 증거하는데, 너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여기는가? 너는 너희 마음속의 꿍꿍이수작과 속에 들어 있는 것들을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여기는가? 하나님이 그렇게 만만해 보이는가? 대하고 싶은 대로 대해도 된다는 말인가? 이전에는 너희가 속박받을까 봐 내가 너희를 풀어 주었다. 그러나 사람은 오히려 호의를 모르고 만족할 줄 모른다. 너희가 서로 알아보아라, 나는 그 어떤 사람도 대처(역주: 질책)한 적이 거의 없고 그 어떤 사람도 쉽게 훈계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사람의 속셈과 관념을 모두 분명하게 알고 있다. 너는 하나님이 증거한 하나님 자신을 바보라고 여기는가? 그렇다면 나는 네가 너무 눈멀었다고 말한다. 나는 너를 상관치 않을 테니 네가 어느 정도까지 패괴(역주: 부패, 타락)될 수 있는지 보자. 너의 그 잔꾀가 너를 구할 수 있는지 아니면 네가 하나님을 마음껏 사랑하는 것이 너를 구할 수 있는지 보자. 나는 지금 너를 정죄하지 않겠다. 하나님의 때가 되면 하나님이 너에게 어떻게 보응하는지 보아라. 지금은 너와 한담할 시간이 없다. 너 한 사람 때문에 더 큰 사역이 지체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너 같은 구더기는 하나님이 시간을 내서 상대할 가치가 없다. 네가 어느 정도까지 방탕할 수 있는지 보자.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 알기를 추호도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으면서 하나님께 의인으로 칭함받고 싶어 하는데 이것은 웃기는 일이 아닌가? 어쨌든 일부 소수의 성실(역주: 거짓이나 꾸밈이 없음)한 사람들이 있기에 나는 줄곧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하며 단지 지금 내가 해야 할 것만 다한다. 이후에는 각 사람이 행한 것에 따라 보응을 할 것이다. 내가 해야 할 말은 분명히 다했다. 그것은 내가 하는 것이 바로 이 사역이기 때문이다. 나는 해야 할 것만 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너희에게 가장 바람직한 것은 많이 성찰하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바라는 바이다. 하나님에 대한 너의 인식은 도대체 얼마큼이 진실한 것인가? 너는 하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인가 아닌가? 나는 끝으로 이러한 말을 한 마디 하겠다. “하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에게는 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