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8. 5. 06:20ㆍ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소개/노아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것과 바다의 모든 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들은 너희 손에 붙이웠음이라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찌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채 먹지 말것이니라 내가 반드시 너희 피 곧 너희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창 9:1~6)
…
노아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들여 방주를 지은 뒤, 하나님이 홍수로 세상을 멸하는 날들을 지나 여덟 식구는 생존하게 되었다. 노아의 여덟 식구 이외의 인류는 모두 멸망되었다. 땅의 생물들도 모두 멸망되었다. 이처럼 하나님은 노아를 축복으로 대했다. 하나님은 노아와 노아의 아들에게 어떤 말씀을 하였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 노아에게 베풀어 주려는 것이었고 또 노아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이었다. 이는 하나님이 그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의 명령을 받아들인 사람에게 주는 축복이고 약속이었다. 또한 하나님이 사람에게 상을 주는 방식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보기에 노아가 완전한 자이든 의인이든 상관없고, 하나님에 대해 얼마나 알든 상관없었다. 결국, 노아와 그의 세 아들은 하나님 말씀에 따랐고, 하나님의 사역에 협력했으며,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다. 그리하여 홍수로 세상이 멸망된 뒤에도 인류와 각종 생물이 보존될 수 있게 하였고, 하나님의 다음 단계 경륜을 위해 혁혁한 공헌을 하게 되었다. 노아의 그런 행실 때문에 하나님이 축복을 내린 것이었다. 어쩌면 지금의 사람들에게 있어 노아의 행실은 전혀 언급할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노아도 한 일은 없잖아. 하나님이 노아를 남기겠다고 결정하셨으니 당연히 남게 된 거야.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공로 때문이 아니고 하나님이 이루려고 하셨기 때문이야. 사람은 피동적이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보기에 위대한 사람이든 보잘것없는 사람이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하나님의 명령과 받은 사명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협력하여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순조롭게 완수될 수 있도록 한다면, 이런 행실은 하나님이 기억할 만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만하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의 이런 행실을 소중히 여기며,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이런 정과 마음을 귀하게 여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태도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노아에게 축복을 내렸을까? 하나님은 사람의 그런 행실과 순종을 귀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노아의 홍수ㅡ하나님의 축복 받았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축복을 내린 데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하나님 말씀에 따르고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면 하나님은 사람에게 마땅히 축복을 주셔야 맞습니다. 당연한 것 아닐까요?” 이렇게 말하면 될까? 어떤 사람은 “안 됩니다.”라고 한다. 그렇게 말하면 왜 안 되는 것이냐?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자격이 없습니다.” 이 말도 완전히 맞는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이 준 사명을 받아들였을 때, 사람 행실의 좋고 나쁨과 순종했는지의 여부를 판단하는 데에는 하나님의 한 가지 기준이 있다. 또한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해 드렸는지와 그 사람이 한 행실이 합격점을 받을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데에도 하나님의 한 가지 기준이 있다. 하나님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사람의 외적인 행실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다. 사람이 어떻게 행하든 행하기만 하면 하나님이 당연히 축복을 내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오해이다. 하나님은 일의 결과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일의 발전 과정 속에서 사람의 마음과 태도가 어떠했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핀다. 사람의 마음에 순종이 있는지, 배려가 있는지, 하나님을 만족게 하려는 마음이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당시의 노아는 하나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너희가 지금 알고 있는 이치보다 많이 알고 있었을까? 당시의 노아는 하나님에 대한 개념이나 앎에 관한 진리에 대해 너희보다 더 많이 목양받았을까? 그렇지 않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다. 지금의 사람은 의식적으로나 사상적으로나 심지어 마음 깊은 곳에 하나님에 대한 개념과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가 모호하고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심지어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부인하는 태도까지 보인다. 반면 노아의 마음과 의식 속에는 하나님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에게는 추호의 의심도 없었다. 하나님에 대한 노아의 순종에는 불순물이 없어 검증을 견뎌 낼 수 있었다. 그의 마음은 순결했고 하나님께 활짝 열려 있었다. 그는 하나님이 주는 사명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따르도록 수많은 이치상의 인식으로 자신을 설득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많은 사실로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할 필요도 없었다. 이것이 바로 노아와 지금의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본질적인 차이다. 또한 하나님 안중의 완전한 사람에 대한 진정한 해석이다. 하나님은 노아와 같은 사람을 원하고 인정한다. 이런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대상이다. 여기에서 너희는 어떤 깨달음을 얻었느냐? 사람은 사람의 겉모습을 보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내면과 본질을 본다.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그에 대한 사람의 무책임과 의심을 절대 용납하지 않고, 또 그에 대한 사람의 그 어떤 추측이나 시험도 용납하지 않는다. 지금의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마주하고 심지어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한다고 할 수 있지만, 사람은 내면 깊은 곳에 존재하는 것과 사람의 타락한 본질과 하나님과 적대되는 태도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참된 믿음을 갖지 못하고, 하나님께 순종하지도 못한다. 그러기에 사람은 노아에게 준 것과 같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매우 어렵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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