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매 단계 역사는 어떻게 점점 심화되어 사람을 구원으로 이끌어 갑니까

2019. 5. 28. 09:31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천국 복음/3단계 역사

하나님의 3단계 역사는 어떻게 단계마다 심화되어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합니까?

   『인류를 경영하는 사역을 모두 3단계로 나눈다. 즉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을 모두 3단계로 나눈다. 이 3단계 역사는 창세의 사역을 포괄하지 않고, 율법시대의 사역, 은혜시대의 사역과 하나님나라시대의 사역, 이 3단계 역사이다. 창세의 사역은 다만 전 인류가 생기는 사역일 뿐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이 아니며,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과는 관계가 없다. 그것은 창세할 때 인류가 사탄에게 패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을 할 필요가 없었다.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은 인류가 패괴된 후에야 시작된 것이다. 그러므로 인류를 경영하는 사역도 역시 인류가 패괴된 후에야 시작된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3단계 역사를 인식하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경로이다≫에서 발췌

   『당시에, 여호와가 이스라엘에서 역사한 의의ㆍ목적ㆍ절차는 바로 온 땅에서 그의 사역을 전개하기 위한 것이고,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하여 이방으로 확장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그가 전 우주에서 사역을 하는 원칙━점을 면으로 확대시키고 연후에 확장하여 전 우주 아래가 다 그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데에 달하는 것이다. 처음의 이스라엘 사람은 바로 노아의 후대이다. 이 사람들은 여호와의 생기만 있었고 의식주행도 알고 있었지만 여호와가 어떤 한 분의 하나님인지를 몰랐고 사람에 대한 그의 뜻도 몰랐으며 더욱이 사람이 어떻게 조물주를 경외해야 하는가도 몰랐다. 규례가 있는지, 율례가 있는지, 피조물이 조물주께 해야 할 사역이 있는지, 아담의 후대는 이런 것을 전혀 몰랐다. 그들은 남편으로서는 힘내고 땀 흘려 온 집 식구를 부양해야 하며 아내로서는 남편에게 순종해야 하고 여호와가 만든 인류를 위하여 대를 잇는 것만 알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여호와의 생기와 여호와의 생명만 있는 이와 같은 사람은 어떻게 하나님의 법도를 준행하고 어떻게 조물주를 만족케 할 것인가를 몰랐다. 그들이 깨달은 것은 너무나 적었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그들의 마음속에 비록 사곡과 궤사가 없고 질투 분쟁도 매우 적었지만 그들은 여호와━조물주를 알지 못하였고 이해하지도 못하였다. 이러한 사람의 조상은 여호와의 것을 먹는 것만 알고 여호와의 것을 누릴 줄만 알 뿐, 여호와를 경외할 줄 모르고 여호와가 그들이 엎드려 경배해야 할 분임을 몰랐다. 이를 어찌 피조물이라 할 수 있겠는가? 이러면, “여호와가 조물주이다”, “그가 인류를 만든 것은 그를 창현(彰顯)하고 그를 영화롭게 하고 그를 대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는 이 말씀이 수포로 되지 않겠는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여호와의 영광의 간증이 될 수 있겠는가? 어떻게 여호와의 영광의 창현이 될 수 있겠는가? 그러면 여호와가 말한 “나는 나의 형상대로 인류를 만들었다”는 이 말씀이 사탄━그 악한 자에게 잡힐 약점으로 되지 않겠는가? 이 말씀이 여호와가 인류를 만든 것을 모욕하는 기호로 되지 않겠는가? 그 단계 사역을 완성하기 위하여 여호와는 인류를 만든 후 아담부터 노아까지 그들을 지시하지 않았고 인솔하지 않았으며, 홍수로 세상을 멸한 후부터 정식으로 이스라엘 사람━노아의 후대, 즉 아담의 후대를 인솔하였다. 이스라엘에서 역사하고 말씀하면서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을 이스라엘 온 땅에서 생활하도록 인솔하였으며, 더 나아가서는 사람으로 하여금 여호와가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그의 생명이 있게 하고 흙에서 소생되어 피조된 인류로 되게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류를 불사르고 인류를 저주하고 그의 형장(刑杖)으로 인류를 관리할 수 있으며, 또한 사람을 땅에서 생활하도록 인솔하면서 낮과 밤의 서로 다른 시간에 근거하여 사람들 가운데서 말씀하고 역사할 수 있다는 것을 보게 하였다. 그가 한 사역은 다만 피조물로 하여금 사람이 본래는 여호와가 땅에서 취한 흙으로부터 왔고 또한 여호와가 만들었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럴 뿐만 아니라 그가 먼저 이스라엘에서 역사한 것은 더욱더 이스라엘 이외(사실 이스라엘 이외가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중에서 갈라져나온 이방과 외족이지만 그 조상은 여전히 아담과 하와임)의 각방(各邦) 각 족속으로 하여금 이스라엘로부터 여호와의 복음을 받을 수 있게 하여 전 우주 아래의 피조물이 모두 여호와를 경외할 수 있고 여호와의 이름이 크게 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가령 여호와가 첫 시작에 이스라엘에서 역사하지 않고 다만 인류를 만든 후 인류로 하여금 땅에서 우려없이 생활하게 하였다면, 사람의 육체의 본성을 놓고 말하면(본성이란 바로 사람이 영원히 사람이 볼 수 없는 것들을 모르며 즉 여호와가 만든 인류임을 모르고 더욱이 무엇 때문에 여호와가 인류를 만들었는가도 모른다는 것을 가리킨다), 여호와가 만든 인류임을 영원히 모르고 여호와가 만물의 주라는 것도 영원히 모른다. 만일 여호와가 인류를 만든 후 땅에 놓아두고 향수지물(享受之物)이 있게 한 다음 그대로 내버린 채 떠나고 오히려 사람들 가운데서 사람을 한동안 인솔하지 않는다면, 온 인류는 없어지게 된다. 심지어 창조한 천지만물과 창조한 온 인류마저도 없어지게 될 것이고 또한 사탄에게 짓밟히는 곳이 될 것이다. 이러면, 여호와가 바라던 “땅에 즉 그가 만든 것 가운데 그의 발붙일 곳 즉 성지가 있을 것이다”는 이 염원이 무너질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니, 그가 인류를 만든 후에 인류 가운데서 사람을 인솔하여 생활할 수 있고 인류 가운데서 사람에게 말씀할 수 있는 것은 모두 그의 염원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고 역시 그의 계획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다. 그가 이스라엘에서 역사한 것은 단지 만물을 창조하기 전에 세운 그의 계획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먼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역사한 것은 그가 만물을 창조한 것과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모두가 그의 경영을 위한 것이고 그의 사역을 위한 것이며 그의 영광을 위한 것이고 또한 그가 인류를 창조한 것에 더 깊은 의의가 있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노아 이후에 땅 위의 인류를 2천년 동안 생활하도록 인솔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모두 사람이 어떻게 여호와 만물의 주를 경외해야 하는가를 깨닫게 하였으며, 또한 사람이 어떻게 생활해야 하고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도 깨닫게 하였으며, 더욱이 어떻게 여호와를 위하여 간증하고 그에게 순복하고 그를 경외해야 하는가도 깨닫게 하였으며, 더 나아가서는 다윗과 그의 제사장들처럼 악기를 울리며 여호와를 찬미하게 하였다.

하나님의 매 단계 역사는 어떻게 점점 심화되어 사람을 구원으로 이끌어 갑니까


   여호와가 2천년의 사역을 하기 전에 사람은 아무것도 몰랐고 거의 다 타락되었다. 더 나아가 홍수로 세상을 멸하기 전에는 음란하고 패괴되고 마음속에 아예 여호와가 없고 더욱이 여호와의 말씀도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들은 여호와가 무슨 사역을 하려 하는지를 전혀 깨닫지 못하였다. 그들은 이지(理智)가 없었고 더욱이 견식도 없었는데, 다만 숨쉬고 있는 기계와 같았다. 사람ㆍ하나님ㆍ만물ㆍ생명 등등 이런 것에 대하여 그들은 일률로 몰랐다. 땅에서 그들은 독사가 유혹한 많은 사역을 하였고 여호와를 범하는 많은 말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무지함으로 인하여, 여호와는 그들을 형벌하지 않았고 그들을 징계하지도 않았다. 다만 홍수로 세상을 멸한 후 즉 노아가 육백한 살 된 후에 여호와가 정식으로 노아에게 나타나 노아와 그의 식구들을 인솔하였을 뿐이다. 바로 홍수 이후에 존류한 날짐승과 길짐승과 노아 및 그의 자손 후대를 율법시대가 끝날 때까지 인솔하였는데, 도합 2천 5백년이다. 그가 이스라엘에서 역사한 것은 즉 정식으로 역사한 것은 도합 2천년이고,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이외에서 동시에 역사한 것은 도합 5백년이다. 합치면 도합 2천 5백년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율법시대의 사역≫에서 발췌

   『은혜시대에, 사람은 이미 사탄의 패괴를 겪었다. 전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을 하려면, 역사 효과에 달하도록 반드시 풍부한 은혜가 있어야 하였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포용과 인내가 있어야 하였으며 더욱이 사람의 죄과를 족히 사할 수 있는 속죄제도 있어야 하였다. 은혜시대의 사람이 본 것은 단지 사람의 죄과를 사하는 속죄제, 즉 예수였다. 그들은 하나님이 사람을 긍휼히 여길 수 있고 사람을 포용할 수 있다는 것만 알았다. 그들이 본 것은 단지 예수의 긍휼과 자애였는데, 이런 것은 모두 그들이 은혜시대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구속되기 전에는 반드시 그들에게 베풀어준 예수의 많고 많은 은혜를 누려야 하였다. 이래야 그들에게 유익한 점이 있었는데, 그들로 하여금 은혜를 누리는 것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게 하였고 또 그들에게 베풀어준 예수의 포용과 인내를 누리는 것으로 말미암아 속죄의 기회를 얻게 하였다. 예수의 포용과 인내로 말미암아 사람은 죄 사함을 받고 그들에게 베풀어준 예수의 풍부한 은혜를 누릴 자격이 있게 되었다. 마치 예수가 “내가 온 것은 의인을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죄인을 구속하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것이니라”고 한 것과 같다. 만약 예수가 말씀이 육신 되어 가져온 성품이 심판과 저주일 뿐만 아니라 여태껏 사람이 범하는 것을 허용치 않는 것이라면, 사람은 영원히 구속될 기회가 없을 것이다. 그때면, 사람이 영원히 죄에 속할 것이다. 이렇다면 6천년 경영 계획이 다만 율법시대에 정지되어 율법시대가 6천년까지 지속될 수밖에 없고, 사람의 죄가 점점 많아지고 점점 깊어질 수밖에 없어 인류를 만든 전부의 의의가 없어지며, 사람은 다만 율법 아래에서 여호와를 섬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류의 죄과는 오히려 시초에 만든 인류를 초과하였다. 예수가 인류를 사랑하고 사람의 죄를 사하고 사람에게 넉넉한 긍휼과 자애를 가져다줄수록 사람은 더욱 예수께 구원받고 큰 값으로 사온 길 잃은 예수의 어린 양이라 할 자격이 있게 되며, 사탄도 이 사역에 손댈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예수가 마치 자애로운 어머니가 품속의 갓난애를 대하는 것처럼 그를 따르는 사람을 대하고 그들에 대하여 노하지 않고 혐오하지도 않고 위로의 마음이 충만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그들 가운데서 여태껏 진노를 크게 발하지 않았으며, 그는 그들의 죄과를 포용하였고 그들의 우매함과 무지함을 보지 않았으며, 심지어 그가 “사람을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여 다른 사람의 마음이 그의 마음에 감화되었다. 이리하여 사람이 비로소 포용으로 인하여 죄 사함을 받게 되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구속시대의 사역 내막≫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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