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능하신 하나님, 성육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말씀 선포

2020. 8. 16. 09:40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그림전

전능하신 하나님, 성육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말씀 선포

  하나님은 이미 나타났고 새로운 시대를 가져왔어요.
주님이 다시 온다는 예언은 이미 이루어졌고 주님도 이미 돌아오셨어요. 바로 성육신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신데 수백만 자에 달하는 말씀을 선포하고 하나님나라시대의 사역을 시작했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음성임을 알아차린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발걸음을 따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심판을 받아들이고 사람을 정결게 하고 구원하는 사역을 받아들였으며, 하나님은 이미 한 무리 이긴 자들을 만드셨어요. 오늘날, 전능하신 하나님의 나타나심과 사역의 전 과정을 그림전의 형식을 통해 각 나라와 각방의 사람들에게 전시했어요. 이 한 폭 한 폭의 그림과 소개를 보면 하나님이 정말 돌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거에요! 당시의 주 예수 그리스도처럼 우리 가운데 생활하면서 실제적으로 사역하여 사람을 구원하고 있어요. 오늘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이 곧 끝나는데 아직도 하나님의 말세 사역의 구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재난 속에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전능하신 하나님은 1991년 2월부터 1993년 초까지 이미 80여만 자의 말씀을 선포하여 성경 속의 일부 중요한 비밀을 밝히시고, 사람이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깨닫고 진입해야 할 수많은 진리를 천명하셨습니다. 어떤 말씀은 세 단계 사역의 실상과 그것이 맺는 결실에 대해 천명했고, 어떤 말씀은 하나님 이름의 비밀과 성경의 실상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어떤 말씀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반드시 지녀야 할 관점, 하나님 사역이 사람에게 시련을 주고 연단하는 것의 의미,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을 정결케 하고 구원하시는지, 어떻게 생명 성품의 변화에 이를 수 있는지 등을 알려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교만함과 거만함, 독선, 교활함과 간사함, 이기심과 비열함 등 사탄 성품을 심판하고 폭로하셨고, 사람의 사탄 본성과 내면 깊숙이 숨겨져 있는 여러 가지 속셈과 생각을 폭로하고 해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구절마다 사람의 마음에 와닿았고, 비록 매섭고 마음을 찌르기는 했지만 모두 실상만을 폭로함으로써 사람을 진심으로 감복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 선민들은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사람은 어떻게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패괴를 아는 걸까? 어떻게 우리 마음과 생각을 꿰뚫어 보는 걸까? 하나님을 제외하고 누가 사람을 이렇게 제 손금 보듯 훤하게 알 수 있을까? 누가 사람의 패괴된 진상과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을까? 오직 성령만이 사람의 폐부와 심장을 감찰할 수 있을 뿐이야!’ 그렇게 하나님 선민들은 그 말씀이 하나님의 음성이자 성령의 말씀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시는 인자가 성육신하신 하나님 자신이란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선지자처럼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특수한 역할을 맡은 사람이라고만 여겼습니다.

  당시, 전능하신 하나님은 자신이 바로 성육신하신 하나님임을 알리는 것이 급하지 않으신 듯, 그저 끊임없이 음성을 발하시며 사람에게 진리를 공급해 주셨습니다. 그러다 1993년 2월, 전능하신 하나님은 <성육신의 비밀> 1편부터 4편까지의 말씀을 선포하여 성육신의 비밀을 밝히시고, 성육신하신 하나님과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의 본질적인 차이에 대해 천명하셨습니다.

  관련된 하나님 말씀
『성육신이란 하나님이 육신으로 나타난 것을 일컫는다. 즉, 하나님이 육신의 형상으로 자신이 만든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육신이라고 한 이상, 무엇보다 먼저 육신, 특히 정상 인성을 갖춘 육신이 필요하다. 이것은 최소한으로 갖춰야 할 조건이다. 사실, 하나님이 입은 육신의 함의는 육신으로 사역하고 육신으로 생활하는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본질이 육신이 되고 사람이 된 것이다. …
… 성육신이란 하나님의 영이 육신 된 것, 즉 하나님이 육신 됨을 말한다. 그러므로 육신이 하는 사역은 영이 하는 사역이다. 영이 하는 사역은 육신에 실체화되며, 육신을 통해 발현된다. 하나님이 거하는 육신 외에는 누구도 성육신 하나님의 직분을 대신할 수 없다. 하나님이 입은 육신의 정상 인성만이 신성 사역을 선포할 수 있고, 그 외에는 어느 누구도 그것을 대신할 수 없다는 말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본질> 중에서

  『성육신 하나님을 가리켜 그리스도라 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이며, 이 육신은 육에 속한 그 어떤 사람과도 다르다. 다르다고 말하는 이유는 그리스도가 육에 속하지 않은, 영의 화신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정상 인성과 완전한 신성을 갖고 있으며, 그의 신성은 어느 누구에게도 없는 것이다. 그의 정상 인성은 육신으로 하는 모든 정상적인 활동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고, 신성은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인성이든 신성이든 모두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한다. 그리스도의 본질은 영이자 신성이기에 그의 본질이 곧 하나님 자신의 본질이다. 그 본질이 그의 사역을 방해할 리 없다. 그는 자신의 사역을 망치는 일도, 자신의 뜻에 위배되는 말도 할 리가 없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본질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중에서

  『비록 성육신 하나님이 겉으로는 사람과 다르지 않고, 사람의 지식을 배우고 사람의 언어를 쓰며, 심지어 사람의 방식과 화법을 빌려 그의 뜻을 표현할 때가 있을지라도, 그가 인류를 대하고 일을 바라보는 시각은 패괴된 인류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게다가 그는 패괴된 인류라면 누구도 닿을 수 없는 위치와 차원에서 사물을 바라본다. 하나님은 진리이기 때문에 그가 입고 있는 육신도 마찬가지로 하나님 자신의 본질을 갖추고 있으며, 그의 생각과 인성이 나타내는 것 역시 진리인 것이다. 패괴된 인류에게 있어, 하나님의 육신이 선포하는 것은 다 진리의 공급이자 생명의 공급이고, 이는 특정한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 인류를 향한 공급이다. 패괴된 사람은 누구나 자신과 관련된 몇몇 사람만을 마음에 수용할 수 있고,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걱정하는 이도 단지 몇몇뿐이다. 재난이 닥치면 먼저 자기 집의 아이들과 배우자, 부모만을 생각한다. 비교적 ‘넓은 사랑’을 가진 사람도 고작 어느 친척이나 친한 친구를 생각할 뿐이다. 이보다 더 많은 이를 떠올릴 수 있겠느냐? 절대 그럴 리가 없다! 사람은 어디까지나 사람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사람의 위치와 차원에서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 입은 육신은 패괴된 인류와 완전히 다르다. 그 육신이 아무리 평범하고 정상적이며 보잘것없어 보여도, 심지어 사람의 멸시를 당해도, 그의 마음과 인류에 대한 태도는 그 어떤 사람도 갖출 수 없고 모방할 수도 없다. 그는 언제나 하나님의 위치에서, 창조주의 차원에서 인류를 관찰하고, 하나님의 본질과 마음으로 인류를 대한다. 그는 절대 평범한 사람의 차원에서, 패괴된 사람의 관점으로 인류를 대하지 않는다. 사람은 사람의 안목으로, 사람의 지식과 규칙, 학설 등을 평가 기준으로 인류를 바라본다. 이런 것은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있고 패괴된 인류가 이를 수 있는 범주이다. 하나님이 인류를 볼 때는 하나님의 시각과 본질, 소유와 어떠함을 평가 기준으로 삼는다. 이 범주는 사람이 볼 수 없는 범주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입은 육신과 패괴된 인류의 확연히 다른 점이다. 이 차이는 각자의 본질로 말미암아 결정된 것이고, 본질의 차이는 각자의 신분과 지위, 사물을 대하는 관점과 차원을 결정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사회 경험이 있는지, 가정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어떻게 경험했는지는 모두 네가 드러낸 것에서 알 수 있다. 하지만 성육신 하나님이 하는 사역에서는 그의 사회적 이력을 볼 수 없다. 그는 사람의 본질을 손바닥 보듯 훤히 꿰뚫고 있어서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의 다양한 행동을 모두 들춰낼 수 있으며, 사람의 패괴 성품과 패역 행위는 더욱 잘 들춰낼 수 있다. 세상 사람들 속에서 생활하지 않지만 일반인의 본성과 세상 사람의 모든 패괴를 알고 있다. 이것이 바로 그의 어떠함이다. 그는 세상을 겪어 보지 못했지만, 세상살이에 관련된 작은 것까지 잘 알고 있다. 사람의 본성을 다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고, 사람의 귀로는 들을 수 없는 영의 역사를 알 수 있으며, 현재나 과거의 것을 모두 알고 있다. 여기에는 처세 철학이 아닌, 지혜와 사람이 측량할 수 없는 기묘함이 담겨 있다. 이것은 그의 어떠함으로, 사람에게 공개되기도 하고, 숨겨져 있기도 하다. 그가 나타내는 것은 비범한 사람의 어떠함이 아니라 영의 고유한 속성과 어떠함이다. 그는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지 않았지만 천하의 일을 모두 알고 있다. 그는 지식도, 식견도 없는 ‘유인원’들을 접했지만 지식보다 뛰어나고 위인보다 고매한 말씀을 선포한다. 또 그는 인성이 없고 인성의 상규와 인성 생활을 모르는 어리석고 무감각한 사람들 속에서 살지만, 인류에게 정상 인성으로 살 것을 요구할 수 있고, 동시에 인류의 비열하고 천박한 인성을 들춰낸다. 이 모든 것은 그의 어떠함으로, 육에 속하는 그 어떤 사람의 어떠함보다도 높다. 그는 복잡하고 번거로우며 불결한 사회생활을 체험하지 않아도 그가 해야 할 사역을 충분히 할 수 있으며, 패괴된 인류의 본질을 남김없이 들춰낼 수 있다. 불결한 사회생활은 그의 육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의 사역과 말씀은 사람의 패역을 들춰내기만 할 뿐, 사람에게 처세 경험이나 교훈을 공급하지는 않는다. 그는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할 때, 사회 조사도, 사람의 가정 조사도 할 필요가 없다. 그가 사람을 들춰내고 심판하는 것은 그의 육신이 체험한 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그는 오래전부터 사람의 패역을 알고 인류의 패괴를 증오했기에 사람의 불의를 들춰내는 것이다. 그가 하는 사역은 다 사람에게 그의 성품을 공개하고, 그의 어떠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사역은 그 자신만이 할 수 있으며, 육에 속한 사람이 다다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가 한 사역을 놓고 보면 사람은 그가 어떤 부류의 사람이라고 분명하게 말하지 못한다. 그가 행한 사역을 놓고 보나, 그의 어떠함을 놓고 보나 사람은 그를 피조된 인간으로 분류할 수 없어 비인류로 분류시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또 어떤 유형에 해당하는지 몰라 ‘신’으로 분류했다. 사람의 이런 행동이 이치에 어긋난 것은 아니다. 이는 그가 사람들 가운데서 사람이 할 수 없는 수많은 사역을 했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 중에서

  『그는 하나님의 본질을 지닌 사람이기에 창조된 그 어떤 사람보다도 지극히 높고,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그 어떤 사람보다도 지극히 높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외형을 지닌 사람들 가운데, 즉 인성을 지닌 모든 사람 가운데 오직 그만이 성육신한 하나님 자신이며, 그 외에는 모두 창조된 인류인 것이다. 똑같이 인성을 갖추고 있지만, 창조된 사람은 인성 말고는 다른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성육신 하나님은 다르다. 그의 육신에는 인성 말고도 무엇보다 중요한 신성이 있기 때문이다. 인성은 육신의 외관으로 알아볼 수 있고, 일상생활에서 발견할 수도 있지만 신성은 쉽게 알아보지 못한다. 신성은 인성이 있는 전제하에 나타나며, 사람의 상상처럼 그렇게 비범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에게는 신성을 발견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사람들이 지금까지 가장 측량하기 어려워하는 것은 성육신 하나님의 본질이 도대체 무엇이냐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많은 말을 했음에도 너희 대다수는 이에 대해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이것은 아주 간단한 문제이다. 하나님이 성육신하였으니 그의 본질은 인성과 신성의 결합체이다. 이 결합체를 하나님 자신이자 땅의 하나님 자신이라고 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본질> 중에서

  『그리스도의 사역과 말씀이 그의 본질을 결정한다. 그는 진심을 다해 자신의 어깨에 놓인 사명을 완성하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경배하며,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구한다. 이는 모두 그의 본질로 결정된다. 그에게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 역시 그의 본질로 결정된다.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이라고 하는 까닭은 그가 드러내는 것들이 처음부터 가지고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언가를 모방한 것도 아니고, 사람에게 배우거나 수년간 양육받은 결과도 아니며, 그가 스스로 배우거나 꾸민 것도 아니다. 사람은 그의 사역과 말씀을 부정하고, 그의 인성과 그가 지닌 정상 인성의 모든 생활을 부정한다. 하지만 그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배한다는 사실은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또한 그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왔으며,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구한다는 사실 역시 아무도 부인하지 못한다. 그의 형상은 사람의 이목을 끌지 못하고, 그의 말에는 비범한 분위기가 풍기지 않으며, 그의 사역은 사람이 상상하는 것처럼 천지를 개벽하거나 세상을 뒤흔들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분명 진심을 다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려 하고 하나님 아버지께 완전히, 죽기까지 순종하는 그리스도이다. 그의 본질이 바로 그리스도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이를 쉽게 믿지 못하지만 이는 분명 존재하는 사실이다. 그리스도가 직분을 완전히 다하고 나면, 사람은 그의 사역을 통해 그의 성품과 어떠함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성품과 어떠함을 대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때, 그가 행한 모든 사역을 종합해 보면, 그는 육에 속한 사람과 같은 육신이 아닌, ‘말씀’으로 된 ‘육신’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본질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중에서

  『하나님은 땅에서 이렇게 오랜 세월 사역하면서 항상 사람을 통해서 사역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이 성육신 하나님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는 그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라고 일컬을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하나님은 직접 신의 위치에서 말씀하며, 영의 음성을 발하고, 영을 대신해 사역한다. 똑같이 하나님의 영이 육신을 통해 사역을 하는 것인데 어째서 역대로 그렇게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 쓰임 받으면서도 하나님이라고 불리지 못했겠느냐? 하나님의 영은 오늘날 직접 육신으로 사역하고, 예수도 하나님의 영이 육신으로 사역한 것이었다. 하지만 양자는 하나님이라고 불린다. 그 차이가 무엇이겠느냐? 역대로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들은 모두 정상적인 사유와 이성을 지니고 있었으며, 사람의 처신 원칙을 알고 있었다. 또한, 정상인의 생각과 정상인이라면 마땅히 갖춰야 할 것을 갖추고 있었으며, 대부분이 천성적으로 총명하고 재능이 출중했다. 하나님의 영은 그 사람들에게서 그들의 은사인 재능을 통해 사역했다. 즉, 하나님의 영이 그 사람들에게 있는 것을 발휘시킨 것으로, 그들의 장점을 이용해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본질에는 생각하는 것도 사유도 없으며, 사람의 뜻이 섞여 있지 않다. 심지어 정상인이 갖추고 있는 것도 결여되어 있다. 다시 말해, 사람의 처세 원칙조차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날, 땅에 임한 하나님이 바로 이렇다. 그의 사역과 말씀에는 사람의 뜻이 섞여 있지 않으며, 사람의 생각도 없다. 직접 영의 원뜻을 드러내고, 직접 하나님을 대표해 사역할 뿐이다. 즉, 영이 직접 말씀한다. 사람의 뜻이 전혀 없이 신성이 직접 사역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이 입은 육신은 직접 신성을 지니고 있지, 사람의 사유나 생각은 없으며, 사람의 처세 원칙도 모른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육신 하나님과 쓰임 받는 사람의 본질적 차이>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읽은 하나님 선민들은 그제야 성육신이 바로 하나님의 영이 육신을 입고 평범한 사람이 된 것이며, 그분이 정상 인성뿐 아니라 완전한 신성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평범하고 정상적인 겉모습을 가지셨지만 신성의 본질을 지니셨고,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시고, 하나님의 사역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과 사역은 모두 하나님 영이 직접 선포하신 것으로, 하나님 자신이 말씀하고 사역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사람의 필요에 따라 진리를 선포해 사람을 양육하고 공급하십니다. 평소 그분이 사람과 접하며 마음을 터놓고 한 이야기들 역시 모두 진리이며, 사람의 뜻이 섞여 있지 않습니다. 이는 성육신하신 하나님이 완전한 신성을 가지고 있음을 충분히 증명합니다. 그분의 인성이 아무리 평범하고 정상이더라도, 사람은 그분이 선포하신 말씀을 들으면 마음속으로 경외심이 생겨나 ‘참으로 성령의 말씀이고, 하나님의 음성이 틀림없구나!’라고 찬탄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다릅니다. 그의 본질은 사람이고 그에게 신성의 본질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선포할 수 없습니다. 또한 비록 성령의 깨우침이 들어 있고 진리에 부합하며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말로 교제한다 해도 그는 그저 하나님 말씀 사역의 기반 위에 자신의 깨달음과 인식 혹은 체험 간증을 말하는 것일 뿐, 하나님이 진리를 선포하시는 것과는 거리가 매우 멉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셨던 선지자처럼,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것 외에는 그저 자신의 체험과 인식을 말할 수 있을 뿐, 직접 하나님 말씀을 선포할 수 없습니다. 또한, 그들이 전하는 하나님 말씀은 한계가 있고, 그들은 하나님을 대표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신분으로 사역을 하는 건 더더욱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는 신성의 본질을 지니고 계시기 때문에 진리를 선포하시고 하나님의 사역을 하실 수 있습니다. 바로 구세주의 현현과 사역을 말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본 하나님 선민들은 줄곧 말씀을 선포하신 인자가 결코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며 특수한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는 더더욱 아니라는 사실을 드디어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선민들은 그제야 비로소 크게 깨우쳤습니다. 그렇게 많은 진리를 선포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그렇게 오랜 시간 사역해 온 인자가 바로 성육신하신 하나님이시자, 현현하시어 사역을 시작하신, 돌아오신 예수님임을 알아본 것입니다! 하나님 선민들은 모두 크게 뉘우치며 괴로움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너무도 눈이 멀어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는 특수한 역할을 이행하는 사람으로, 성령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으로만 생각해 소홀히 대했던 자신을 미워했습니다. 하나님 선민들은 모두 땅에 엎드려 슬프게 통곡하며 전능하신 하나님을 향해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말씀, 그리스도의 낮춤과 감추심이 사람을 정복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바로 하나님 자신이지만, 그리스도는 한 번도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증거하지도, 자신의 신분과 지위를 널리 소문내지도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신분을 자처하신 적은 더더욱 없었습니다. 그저 묵묵히 사람들 사이에서 생활하시며, 진리를 선포해 사람을 공급하고 이끄시며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을 행하셨습니다. 『그는 사역을 통해 자신의 신분을 입증하고, 그가 드러내는 것으로 자신의 본질을 증명한다. 그의 본질은 근거 없는 것이 아니다. 그의 신분은 그가 빼앗아 온 것이 아니라 그의 사역과 본질로 결정된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본질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중에서)라는 하나님 말씀처럼 말입니다. 하나님 선민들은 자신을 지극히 낮추고 감추신 하나님의 크나큰 위대함을 보았습니다! 당시 슬픔과 기쁨이 뒤엉킨 복잡한 감정은 말로 형용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본 그들은 자발적으로 땅에 엎드렸습니다. 그리스도 앞에 엎드리니 기쁨이 있었고, 자신이 진정 하나님 앞에 돌아왔음을,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나타나심과 사역" 그림전

백여 점의 그림과 설명 텍스트로 이루어진 "전능하신 하나님의 나타나심과 사역" 그림전을 통해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기원과 발전 과정에 대해 알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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