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시대 교회 생활과 하나님나라시대의 교회 생활의 차이

2019. 5. 8. 08:10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복음 간증

은혜시대의 교회 생활과 하나님나라시대의 교회 생활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성경 참고: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 26:26~28)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책을 달라 한즉 천사가 가로되 갖다 먹어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하거늘” (계 10:9)

   관련된 하나님 말씀ㅓ    

   『하나님이 은혜시대에 셋째 하늘로 돌아갔을 때 사실 하나님이 전 인류를 구속한 사역은 이미 마지막 단계에 들어섰고 땅에는 그저 예수가 졌던 십자가, 예수의 몸을 감쌌던 세마포, 예수가 썼던 화관과 홍포(유대인들이 그를 희롱할 때의 물건)만 남겨 놓았다. 즉 예수의 십자가 사역은 이미 한때 뒤흔든 후 잠잠해졌고 그 후부터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의 사역을 이어 각처의 교회에서 목양하고 양육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역한 내용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다 회개하고 죄를 자백하고 세례받게 한 것이며, 사도들이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내막과 실제 상황을 전하여 사람들이 다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예수’ 앞에 엎드려 죄를 자백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들도 각처에서 예수가 한 말씀과 정한 율법ㆍ계명을 전한 것이다. 그때부터 은혜시대의 교회 건축이 시작되었다. ……이런 역사와 말씀이 줄곧 오늘까지 지속되었기 때문에 오늘의 종교에서 여전히 ‘함께 누리는’ 것은 이런 부류의 것들인데, 조금도 변화가 없다.』

은혜시대 교회 생활과 하나님나라시대의 교회 생활의 차이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역사와 진입 (6)>에서 발췌

   『사람이 하는 사역은 모두 피조물의 본분을 하는 것이고, 모두 성령의 감동이나 깨우침 아래에서 사역하는 것이다. 그 사람들이 이끄는 것은 모두 일상생활 속에서 사람이 어떻게 실행하는가에 대한 길과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뜻에 맞게 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모두 길을 이끄는 것이며, 새 길이든 옛 길이든 성경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 기초에서 한 사역이고, 지방교회를 회복하든 지방교회를 건립하든, 어쨌든 모두 교회를 세우는 것이며, 그들이 한 것은 모두 은혜시대에 예수와 기타 사도가 다 하지 못하였거나 심화되지 못한 사역을 이은 것이다. 그들이 한 사역에서 머리에 쓰고, 세례를 받고, 떡을 떼거나 포도주를 마시는 것과 같은 것은 모두 예수의 당시의 역사 중에서 후세 사람에게 하라고 요구한 것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들의 사역은 모두 성경을 지키는 것이고 성경에서 길을 찾는 것이어서 조금도 새로운 진전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한 사역 중에서 사람은 다만 성경에서 또 새 길을 발견하였다는 것만 볼 수 있을 뿐이고, 성경에서 또 더 좋고 더 현실적인 실행을 찾았다는 것만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사람은 그들의 사역에서 하나님의 현시의 뜻을 찾을 수 없고 더욱이 말세에 하나님이 하려는 더 새로운 사역도 찾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걷는 길은 여전히 옛길이어서 갱신이 없고 진전이 없으며, 여전히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이 사실을 지키며, 여전히 “사람으로 하여금 회개하게 하고 죄를 자백하게 하는” 이 실행을 지키며, 여전히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는 이 논법을 지키며, 여전히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여자는 마땅히 자기의 남편에게 순종할지니라”는 이 논법을 지키며, 더욱이 “자매는 설교해서는 안 되고 순종하는 사람으로 될 수밖에 없다”는 이 전통 관념을 지키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1)>에서 발췌

   『너희가 말하는 것은 여전히 다 낡아 빠진 것들이 아니겠는가? 그런 것들은 보좌에 오르거나 왕이 될 분량을 예비하는 것, 자기를 버리거나 자신을 극복하는 것, 인내하거나 모든 일에서 공과를 배우는 것, 겸손하거나 사랑하는 이런 것들인데, 이것은 옛 노래를 반복해 부르는 것이 아닌가? 모두 포장만 바꾸고 내용은 바꾸지 않는 격이다! 머리에 수건을 쓰고 떡을 떼는 것이 아니면 안수 기도하거나 병을 고치거나 귀신 쫓는 것인데, 또 무슨 새로운 사역이 있을 수 있겠는가? 무슨 발전과 앞날이 있을 수 있겠는가?』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호칭과 신분에 관한 논법>에서 발췌

   『마치 교계의 목사와 지도자들과 같다. 그들은 은사와 직함을 내세워 사역하는데, 오랜 시간 그들을 따른 사람들은 그들의 은사에 전염되고, 또한 그들의 어떤 소시에 물들게 된다. 그들은 사람의 은사를 중시하고, 사람의 재능과 지식을 중시하며, 또한 어떤 초자연적인 것들과 심오하고 비현실적인 많은 도리를 중시한다(물론 그런 심오한 도리는 다 사람이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은 사람의 성정 변화를 중시하지 않으며, 사람의 설교 능력과 사역 능력을 훈련시키는 것을 중시하고 사람의 지식과 풍부한 종교적 도리를 끌어올리는 것을 중시한다. 또한 사람의 성정 변화가 어떠한지, 사람이 깨달은 진리가 어떠한지에 대한 것은 중시하지 않고, 사람의 실질에 대해서도 전혀 관심을 두지 않으며, 사람의 정상적인 정형과 비정상적인 정형은 더욱 파악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람의 관념을 반격하지 않고, 들추어내지도 않으며, 더욱이 사람의 패괴와 부족한 부분을 책망하지도 않는다. 그들을 따르는 사람은 대다수가 천성적인 은사로 섬기는 것이고, 발표해 내는 것은 지식과 막연한 종교적 진리이고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어서 사람에게 전혀 생명을 얻게 하지 못한다.』……『종교적인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자매님, 요즘 정형이 어떠세요?” “저는 하나님께 빚졌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고, 다른 한 사람은 “저도 하나님께 빚졌고 저도 하나님을 만족케 하지 못해요.”라고 말하는데, 단지 이 몇 마디 말과 몇 글자로 그들 마음 깊은 곳의 더러운 것들을 표현해 냈다. 바로 이러한 말은 사람을 가장 혐오케 하고 또한 극도로 반감을 갖게 한다. 이 사람들의 본성은 모두 하나님과 적대되는 것이다. 실제를 중요시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있는 그대로 교통하고, 마음을 털어놓고 교통하며, 거짓된 과정이 전혀 없고, 형식적인 인사가 없으며, 입에 발린 말을 하지 않고, 모두 직설적이고 그 어떤 세속적인 규칙도 없다. 어떤 사람들은 겉으로만 하기 좋아하고, 심지어 이지(理智)는 조금도 없다. 그런 사람은 다른 사람이 노래하기만 하면 춤추기 시작하는데, 밥이 다 타는 것도 모른다. 그런 사람은 경건하지 않고 존귀하지 않으며 너무나 경망스럽다. 그것은 다 실제가 없는 표현이다! 어떤 사람들은 함께 영적인 생명의 일을 교통할 때 비록 입으로는 하나님께 빚졌다고 말하지 않지만 마음에는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 있다. 네가 하나님께 빚졌다고 느껴지는 것은ㅋㅋ

45 다른 사람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다. 너는 하나님께 빚진 것이지 사람에게 빚진 것이 아니다. 네가 늘 다른 사람과 그런 말을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너는 실제에 진입하기를 중요시해야지 겉면의 열정과 겉면의 표현을 중요시해서는 안 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을 믿는 것은 종교 의식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를 중요시해야 하는 것이다>에서 발췌덥보기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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