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 하라 교회생활간증 동영상<마침내 본분을 이행하는 법을 깨닫다>

2020. 10. 22. 06:30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동영상/교회생활 영화

주인공은 무엇을 하든 성의 없고 대충대충 하는 면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면은 교회에서 번역문 감수 본분을 이행할 때도 예외는 아니었죠. 

마음을 기울이면서 꼼꼼하게 검토해야 하는 파일을 받고도 귀찮게 여기며 성급하게 대충 넘어갔습니다. 

그로 인해 결과물에서 계속 실수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문제를 놓고 주인공은 속상해하며 자책합니다. 

회개 하라 교회생활간증 동영상<마침내 본분을 이행하는 법을 깨닫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 말씀으로 심판받은 후에야,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자세의 근본 원인은 불량 기질이 깊이 자리 잡고 있고, 

육을 생각하는 마음이 큰 것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한 본성 때문에 항상 어물쩍 넘어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주인공은 믿음성이 없고 품위가 없고 존엄성을 잃은 자신의 모습을 증오하면서, 

진리를 실천하는 데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니 본분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고, 마음 들여 본분을 이행하는 길을 찾게 된 것입니다.


동영상에 관련 내용 하나님 말씀을 공유했습니다.

『사람은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점점 변화하고, 또 그 과정에서 비로소 충성심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네가 자신의 본분을 이행할수록 더 많은 진리를 얻게 되고, 더 실제적으로 표현하게 된다. 그러나 본분을 건성으로 이행할 뿐 진리를 구하지 않는 사람들은 결국에 도태될 것이다. 그런 자는 진리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본분을 이행하지도 않고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진리를 실행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런 자는 변화되지 않은, 화를 입을 대상이다. 그들이 표현하는 것에는 불순한 것들이 섞여 있을 뿐만 아니라 악으로 가득 차 있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마음을 들여 본분을 다하고 책임을 질 수 있으려면 고통을 겪고 대가를 치러야 한다. 말로만 떠드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본분을 이행하는 데 마음을 들이지 않고 대신 항상 힘만 쓰고자 한다면 분명코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없을 것이다. 너는 그저 형식만 갖추었을 뿐 본분을 얼마나 잘 이행했는지도 스스로 알지 못할 것이다. 마음을 들여 본분을 이행한다면 점차 진리를 이해하게 될 테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본분을 이행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데 마음을 들이면, 점차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자신의 패괴와 부족함을 발견하며 자신의 다양한 내면 상태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마음을 쏟지 않고 겉으로 힘만 쓴다면, 자신의 다양한 내면 상태에 일어나는 변화나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내면 상태의 반응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것은 모두 마음의 문제이다.』(≪그리스도의 좌담 기록≫ 중에서) 

 『본분을 이행하면서 마음을 다하지 않고 건성으로 임하며, 쉬운 방향으로만 행동한다면 그것은 어떤 태도겠느냐? 무성의하게 행동하며 본분에 충성을 다하지 않는, 책임감도 사명감도 없는 태도이다. 본분을 이행할 때마다 적당히 노력하고 적당히 애쓰며, 불성실하게 임하고 대충대충 넘어간다면, 본분 이행을 놀이처럼 가볍게 대한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느냐? 그런 사람은 결국 “당신은 본분을 별로 잘 이행하지 못하는군요. 그저 대충 형식만 갖추고 넘어가는군요.”라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그럼 하나님은 뭐라고 말하겠느냐? 하나님은 너를 믿을 수 없는 자라고 말할 것이다. 하나님이 네게 사역을 맡겼는데, 너는 그것이 중요한 책임이든 일반적인 책임이든 상관 않고 마음과 책임을 다하지 않고, 그 일을 하나님이 네게 준 일이나 사명으로 여기지도 않으며, 또한 그것을 너의 본분이나 의무로 여겨 행하지도 않는다면, 그것은 문제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너의 본분 이행을 ‘믿을 수 없다’라는 말로 정의 내릴 것이고, 너라는 사람의 인품이 부족하다고 말씀할 것이다. 네게 일을 맡겼는데 너는 그런 태도로 임하고, 그런 방식으로 처리한다면, 나중에 네게 또 본분을 맡길 수 있겠느냐? 큰일을 맡길 수 있겠느냐? 어쩌면 네 태도에 따라 네게 본분을 맡길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항상 불안하고 만족감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곤란하지 않겠느냐?』(≪그리스도의 좌담 기록≫ 중에서) 

 『인성이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보지 않을 때도 자신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는 것이 쉬울 것이다. 그들에게 본분을 제대로 이행한다는 것은 그들이 해야 할 일이다. 인성이 없고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는 것이 매우 힘든 과정이다. 다른 사람이 항상 그들을 걱정하고, 감독하고, 진행 상황을 물어봐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일이 맡겨질 때마다 물건 하나를 망쳐놓을 것이다. 요컨대, 사람은 본분을 이행할 때 항상 자기 성찰을 해야 한다. “나는 이 본분을 올바르게 이행했는가? 마음을 들였는가?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대충대충 하려는 내적 상태는 없었는가?” 그러한 내적 상태가 있다면 좋지 않다. 위험한 것이다. 그것은 좁게 보면, 그러한 사람은 신뢰성이 없고 사람들이 그를 믿을 수 없다는 의미다. 더 넓게 보면, 그러한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면서 항상 형식적으로만 하고 계속 하나님을 무성의하게 대한다면 큰 위험에 처하게 된다! 알면서도 속이면 그 결과는 어떻겠느냐? 단기적으로는 패괴된 성품이 있고, 자주 과오를 저지르고도 회개하지 않으며, 진리를 실천하는 방법을 모르고 진리를 실천하지도 않을 것이다. 장기적으로, 계속 그렇게 하면 미래가 사라질 것이고, 결국 곤경에 빠지게 될 것이다. 이것은 소위 큰 실수는 하지 않지만 사소한 실수를 끊임없이 거듭하는 경우이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행동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며 아주 심각한 결과를 낳을 것이다!』(≪그리스도의 좌담 기록≫ 중에서) 

 『그렇게 경솔하고 오만하며 무책임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은 패괴된 성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겠느냐? 그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건달 기질이다. 모든 일에서 그들은 “대충 맞는 것 같아”, “그 정도면 충분해”라고 말한다. 그것은 ‘어쩌면’, ‘아마도’, ‘십중팔구’ 식의 태도이다. 형식적으로 일을 하며, 최소한의 일만 하고 할 수 있는 한 일을 대충 해 나가는 수준에서 만족한다. 일을 진지하게 대하거나 정확함을 추구할 필요도 없으며 원칙을 구하는 것은 더욱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패괴된 성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겠느냐? 이것이 정상 인성의 발현이겠느냐? 그러한 태도를 오만함이라 해도 옳고, 방종함이라 해도 아주 적절하지만, 그러한 태도를 완벽하게 표현하는 유일한 어휘는 ‘건달 기질’이다. 그러한 건달 기질은 대다수 사람의 인성에 존재한다. 모든 일에서 가능한 한 최소한의 노력만 하고, 어떤 일을 대충 할 수 있을지 눈치를 본다. 하는 모든 일에서 기만의 성격을 엿볼 수 있다. 할 수 있는 한 다른 사람들을 속이고 요령을 피우며, 문제를 살피는 데에 많은 시간을 들이거나 깊이 생각하는 것을 싫어한다. 발각되지 않고 문제가 생기지 않으며 책임을 지지 않는 한, 괜찮다고 생각하며 얼렁뚱땅 넘어간다. 번거로움을 무릅쓰면서까지 일을 굳이 잘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사람들은 무엇이든 숙달하는 경지까지 배우는 일이 없으며 배우는 일에 전념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어떤 주제에 대한 전체적인 개요만 대충 알고서는 전문가라고 자칭하면서 이러한 지식에 의존한 채 계속 어물쩍 넘어가려고만 한다. 사람들이 매사를 대하는 태도가 이렇지 않으냐? 이것이 과연 옳은 태도겠느냐? 그러한 사람들이 사람, 사건, 사물에 대해 취하는 이런 태도는 한마디로 ‘대충 되는대로 해 나가는 것’이며, 그러한 건달 기질은 패괴된 모든 인류에게 존재한다.』(≪그리스도의 좌담 기록≫ 중에서) 

 『사람이 섬기는 과정에서 표현해야 할 것을 표현하지 못하고, 본래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못하며, 속이고 대충 하기까지 한다면, 피조물에게 있어야 할 기능을 잃은 것이다. 그런 자는 이른바 ‘둔재’이자 쓸모없는 폐물이다. 그런 자를 어찌 당당한 피조물이라 칭하겠느냐? 겉보기는 화려하나 속은 썩어 문드러진 자가 아니겠느냐? … 너희의 언행이 떳떳하냐? 설마 너희의 그 작디작은 희생으로 내가 베풀어 준 모든 것에 떳떳하단 말이냐? 너희에 대한 나의 마음은 한결같아서 다른 선택지가 없지만, 너희는 나에게 음흉한 속셈과 딴마음을 품고 있다. 이것이 바로 너희의 본분이고 얼마 되지도 않는 너희의 기능이다. 그렇지 않으냐? 설마 너희는 자신들이 아예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지 못했음을 모른단 말이냐? 그렇다면 너희가 어찌 피조물이라 불리겠느냐? 너희가 무엇을 말하고 어떤 모습으로 사는지는 자기 자신이 잘 알지 않느냐? 너희는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면서도 하나님의 관용과 풍성한 은혜를 얻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런 은혜는 한 푼의 값어치도 없는 너희 소인배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라는 것 없이 기꺼이 헌신하는 이들을 위해 예비된 것이다. 너희 같은 사람들, 너희 같은 둔재들은 하늘의 은혜를 누릴 자격이 전혀 없다. 오직 고난의 나날과 끝없는 징벌만이 너희와 함께할 것이다! 너희가 나에게 충성을 다할 수 없다면 너희의 운명은 곧 고통이고, 나의 말과 사역에 대해 책임질 수 없다면 너희의 결말은 곧 징벌이다. 그 어떤 은혜와 축복, 그리고 하나님나라의 아름다운 삶도 너희와는 아무 상관이 없으며 너희가 누릴 몫 또한 없다. 너희에게 이것은 당연한 결말이며 자업자득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말씀에서 『너희에 대한 나의 마음은 한결같아서 다른 선택지가 없지만, 너희는 나에게 음흉한 속셈과 딴마음을 품고 있다. 이것이 바로 너희의 본분이다.』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사명을 받아들이면 충성심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 일편단심으로 충성해야지, 건성으로 해서는 안 되며, 책임을 지지 않거나 자신의 이익이나 기분에 따라 행동해서도 안 된다. 이는 충성하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충성하는 것이겠느냐? 본분을 이행하는 동안 기분, 환경, 사람, 일, 사물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거나 제약을 받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이 사명을 받아들이겠어. 하나님께서 이 사명을 나에게 주신 거야. 이건 내가 해야 할 일이야. 그러니까 이걸 내 일로 간주하고, 하나님을 흡족게 하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삼아 어떤 식으로든 좋은 결과를 낼 거야.” 네게 이러한 내적 상태가 있으면 양심의 지배를 받을 뿐만 아니라 충성하는 마음도 있을 것이다. 효율성과 결과 달성을 위한 노력 없이 일을 끝내는 것에 만족하면서 그저 힘을 다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양심의 기준에 지나지 않으며 충성으로 간주할 수는 없다. 하나님께 충성하는 기준은 양심의 기준보다 약간 높다. 이것은 단지 힘을 다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마음까지 다해야 한다. 항상 본분을 자신이 해야 할 일로 여기고, 이 일에 대해 부담을 가지며, 사소한 실수라도 저지르거나 조금이라도 대충대충 하려는 생각이 들면 가책을 받고 ‘난 이런 사람이 되어서는 안 돼. 하나님께 정말 죄스러워.’라고 생각해야 한다. 진정으로 이성이 있는 사람은 누가 감독하든 안 하든 마치 자신의 일처럼 본분을 다한다. 하나님이 그들에 대해 기뻐하든 아니든, 그들을 어떻게 대하든, 그들은 항상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맡긴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스스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이것이 바로 충성이다.』(≪그리스도의 좌담 기록≫ 중에서) 


 

정직한 사람이 되려면 쉬운 일인가요?

 

교회생활간증 동영상 <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한 전쟁>

 주인공은 처음에 성실하게 전자 제품 수리점을 운영해 왔지만 수입은 보잘것없었습니다. 아내의 불만과 처남의 종용, 거기에 또 사회 분위기까지 더해져 그는 돈을 많이 벌어 잘살아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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