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세 심판 사역의 효과는 말세 심판을 하시는데 어떤 의의가 있는가

2019. 6. 27. 05:28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천국 복음/성육신

하나님의 말세 심판 사역의 효과에서 하나님이 말세에 심판하시는 의의를 볼 수 있다.


   (1) 하나님의 말세 심판 사역은 사람을 정결케 하고 구원하고 온전케 하여 한 무리 이긴 자로 만들기 위함이다.

   성경 참고: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계 3:10~12)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계 14:4~5)

관련된 하나님 말씀:



   『말세의 사역은 각기 부류대로 나누는 사역이고, 하나님의 경영 계획을 끝마치는 사역이다. 그것은 때가 이미 가까이 왔고, 하나님의 날은 이미 왔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의 나라에 들어갈 모든 사람, 즉 그에게 마지막까지 충성하는 사람을 모두 하나님 자신의 시대로 이끌어 들어간다. 그러나 하나님 자신의 시대가 아직 오지 않았을 때, 하나님이 하려는 사역은 사람의 행위를 살피거나 사람의 생활을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패역을 심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의 보좌 앞에 온 모든 사람을 정결케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무릇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라 오늘까지 걸어온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보좌 앞에 온 사람들이다. 그런 이상, 하나님의 마지막 역사를 받아들인 각 사람은 다 하나님이 정결케 할 대상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마지막 역사를 받아들인 각 사람은 다 하나님이 심판할 대상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는 진리로 심판의 사역을 한다>에서 발췌

   『오늘 너희를 심판하고 너희를 형벌하고 또 너희를 정죄하지만 정죄하는 것은 너로 자신을 알게 하기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정죄하든, 저주하든, 심판하든, 형벌하든 너로 자신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모두 너의 성정이 변화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며, 더욱이 너로 자신의 몸값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고, 하나님이 하는 모든 것이 다 공의로운 것이고 그의 성품에 따라 한 것이고 그의 사역의 필요에 따라 한 것이고 역시 사람을 구원하는 그의 계획에 따라 역사한 것임을 보게 하기 위한 것이며, 그는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구원할 뿐만 아니라, 사람을 심판하고 형벌하는 공의로운 하나님임을 보게 하기 위한 것이다. 네가 만약 너의 지위가 낮다는 것만 알고 네가 패괴되고 패역하다는 것만 알 뿐 네가 오히려 하나님이 오늘 네 몸에서 하는 심판과 형벌에 의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나타내려 한다는 것을 모른다면 경력(역주: 체험)할 수가 없고 더욱이 나아갈 수도 없다. 하나님이 와서는 격살하는 것이 아니고 멸하는 것이 아니라 심판하고 저주하고 형벌하고 구원하는 것이다. 6천년 경영 계획이 끝나기 전에 즉 각 부류의 사람의 결말을 드러내기 전에 하나님이 땅에 와서 역사하는 것은 모두 구원하기 위한 것이고 모두 그를 사랑하는 사람을 철저히 온전케 하여 그의 권세 아래에 귀복시키기 위한 것이다. ……사람이 보기에 구원은 하나님의 사랑이지만 하나님의 사랑이라면 형벌ㆍ심판과 저주일 수 없으며 구원하는 데는 반드시 긍휼ㆍ자비가 있어야 하고 더욱이 위로의 말씀도 있어야 하고 하나님이 베풀어 주는 무궁한 축복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사람에게 주는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에 의하여 사람을 감동시켜 사람의 마음을 다 하나님께 드리게 함으로써 사람을 구원해 내는 것이고, 즉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이 바로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이러한 구원은 거래의 구원에 불과하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백배로 베풀어 주어야만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 아래에 귀복할 수 있고, 따라서 하나님을 위하여 분발하고 명예를 빛낼 수 있다는 이것도 전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하나님이 땅에 와서 사역을 하는 것은 조금도 틀림없이 패괴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절대로 친히 사역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이전의 구원 방식은 그의 긍휼 자비를 전부 베풀고 심지어 자기의 전부를 사탄에게 넘겨주는 것으로써 전 인류를 바꾸는 것이었다. 오늘은 이전과 비길 수 없다. 오늘 너희를 구원하는 것은 마지막에 각기 부류대로 되게 하는 때이니 너희를 구원하는 방식은 긍휼 자비가 아니라 형벌과 심판으로써 더 철저하게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받아들인 것은 전부 형벌과 심판, 무정한 격타(擊打)이다. 그러나 너희는 이 무정한 격타에 아무런 징벌도 없음을 알아야 한다. 말씀이 어떻게 엄하든지 너희에게 임한 것은 다만 너희가 보기에 조금도 인정미가 없는 몇 마디 말씀이고, 나의 노가 얼마나 크든지 너희에게 임한 것은 여전히 교훈의 말씀이니 너희를 해치려는 뜻이 전혀 없고, 너희를 사지(死地)에 몰아넣으려는 뜻도 전혀 없다. 이것은 모두 사실이 아닌가? 너희가 알다시피, 지금 공의로운 심판이든지 아니면 무정한 연단과 형벌이든지 그것은 다 구원하기 위한 것이며, 지금 각기 부류대로 되게 하려 하든지 아니면 각 부류의 사람을 드러내려 하든지 모든 말씀과 역사는 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그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공의로운 심판은 사람을 정결케 하기 위한 것이고, 무정한 연단도 사람을 정결케 하기 위한 것이며, 엄한 말씀이든 채찍질이든 다 정결케 하기 위한 것이고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구원 방식은 더 이상 이전과 비교할 수 없다고 한다. 오늘, 공의로운 심판은 너희의 구원이 되었고, 너희를 각기 부류대로 되게 하는 제일 좋은 도구가 되었으며, 무정한 형벌은 너희의 크나큰 구원이 되었다. 이 형벌과 심판에 직면하여 너희가 또 무슨 할 말이 있는가? 너희가 시종 누리는 것은 모두 구원이 아닌가? 너희는 하나님이 성육신한 것을 보았을 뿐만 아니라 그의 전능과 지혜의 소재도 깨달았으며, 더욱이 한 차례 또 한 차례의 격타와 징계도 경력하였다. 그러나 너희는 지극히 큰 은혜도 받지 않았는가? 너희의 복은 어느 누구의 복보다도 더 크지 않은가? 너희의 은혜는 솔로몬이 누린 그 부귀영화보다도 더 풍성하다! 너희가 생각해 봐라, 만일 내가 와서 너희를 대하는 뜻이 정죄와 징벌이고 구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너희의 날이 그래 이렇게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겠는가? 죄에 속한 너희 이 혈기의 사람들이 그래 오늘까지 존류할 수 있겠는가? 만일 너희를 징벌하기 위한 것뿐이라면 구태여 말씀이 육신 되어 이렇게 큰 공정을 움직일 필요가 있겠는가? 너희 이 보잘것없는 사람들을 만일 징벌한다면 한마디 말을 하는 시간이면 되지 않겠는가? 그래 일부러 너희를 정죄한 다음 너희를 멸할 필요가 있겠는가? 너희는 아직도 나의 이 말을 믿지 못하는가? 내가 사람을 구원하는 데는 다만 긍휼ㆍ자비의 방식을 쓸 수밖에 없단 말인가? 또는 다만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으로써 사람을 구원할 수밖에 없단 말인가? 공의로운 성품이 사람으로 하여금 완전히 순복하게 하는 데에 더 유리하지 않은가? 더욱더 사람을 끝까지 구원할 수 있지 않은가?

   내가 한 말은 비록 엄하지만 사람에 대해서는 모두 구원이다. 왜냐하면 나는 말만 하고 사람의 육체를 징벌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사람으로 하여금 다 빛 가운데서 살게 하였고 빛의 존재를 인식하게 하였으며, 빛의 귀중함을 알게 하였고 더욱이 이런 말씀이 사람에 대해 너무나 유익한 점이 있음을 인식하게 하였으며, 하나님이 바로 구원임을 인식하게 하였다. 내가 비록 형벌 심판의 많은 말을 하였지만 결코 사실이 너희에게 임하지는 않았다. 내가 온 것은 바로 사역을 하는 것이고 바로 말을 하는 것이다. 말씀은 비록 엄하지만 모두 너희의 패괴와 패역을 심판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목적은 여전히 사람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구원해 내기 위한 것이다. 바로 말씀으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지 말씀으로 사람을 해치는 것은 아니다. 말씀이 엄한 것은 역사 효과에 도달하기 위한 것이다. 오직 이렇게 역사해야 사람이 자기를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패역 성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 말씀 사역의 가장 큰 의의가 바로 사람으로 하여금 진리를 깨닫는 전제하에서 진리를 실행하여 성정 변화에 이르게 하는 것이며, 자기를 알고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하는 데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오직 말씀하는 역사 방식만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소통할 수 있고, 오직 말씀만이 진리를 천명할 수 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사람을 정복하는 가장 좋은 방식이다. 말씀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한 가지 방식도 사람으로 하여금 더 명확하게 진리를 깨닫게 할 수 없고 하나님의 역사를 깨닫게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최후 한 단계 사역에서 하나님은 사람이 깨닫지 못한 모든 진리와 모든 심오한 비밀을 사람과 말씀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열어놓아 하나님에게서 참 도와 생명을 얻게 하고 따라서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는 데에 이르게 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지위의 복을 내려놓고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한다>에서 발췌

…… 더보기